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会员风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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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업이야기 | 정직한 인품으로 일떠세운 ‘률형’(律哥)의 ‘세진식품’
“자, 전국에 계신 시청자 여러분, 오늘 소개해드릴 연변의 맛은 바로…”
특유의 구수한 사투리와 정감 어린 입담으로 모니터 너머의 시청자들과 소통하는 한 남자, 그 모습이 하도 유쾌하고 활력이 넘쳐서 보는 이마저 저절로 미소 짓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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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방송 판매 하루 매출액이 100만원을 넘기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둔 인터넷스타이자 연변 특산물을 전국 시장에 알리는 데 앞장 선 남자, 그가 바로 더우인에서 ‘률형(律哥)’이라는 닉네임으로 34만명의 팬들을 거느리고 있는 연변세진식품유한회사 박권률(1974년생) 사장이다.

박권률 사장과의 인터뷰는 상자더미가 빽빽하게 들어찬 대형 물류창고에서 이뤄졌다. 지게차가 바쁘게 오가고 전국 각지로 배송될 상자들이 쉼없이 쌓이는 이곳은 물류창고인 동시에 각 민족이 석류알처럼 똘똘 뭉치는 감동적인 이야기가 펼쳐지는 삶의 현장이다.

“어서 오세요! 우리 창고가 좀 시끌벅적하죠?”

일터의 생생한 기운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상자더미 사이에 자리 잡은 모니터 앞, 그 곳에 서있는 박권률 사장의 눈빛은 기분 좋은 긴장감으로 빛나고 있었다.

이 활기찬 현장 뒤에는 흑룡강성 한 오지의 시골소년이 연변에 정착하기까지 흘린 피땀과 눈물 그리고 위기를 정면으로 돌파해낸 뚝심 있는 이야기가 숨어있다.

현재 300여명의 직원과 함께 1만 7,000여평방메터에 달하는 현대식 생산기지를 이끌고 있는 박권률 사장은 “이 창고가 바로 제 놀이터이자 전쟁터입니다. 날마다 수백, 수천개의 택배가 전국으로 나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가슴 속에서 열정이 마구 샘 솟습니다.”라고 말한다.

구멍가게에서 시작된 꿈

흑룡강성의 한 시골마을에서 태여난 박권률 사장은 어린시절부터 가난과 싸우며 자랐다. 늘 세상을 향한 큰꿈을 품고 있었던 그는 젊은 시절 외국으로 건너가 삶의 다양한 현장에서 눈물겨운 경험을 쌓았다. 그렇게 차곡차곡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연변에 정착해 자그마한 수입식품슈퍼마케트를 열게 되였다.

“처음 연변에 슈퍼마케트를 열었을 때 매장 크기가 겨우 70~80평방메터 남짓했습니다. 말 그대로 구멍가게였지요.”

구멍가게를 경영하면서도 그는 눈앞의 작은 리익보다 소비자가 진정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앞서 고민했다. 고민은 늘 새로운 해결책과 답을 선물한다. 긴 고민 끝에 그는 ‘우리만의 진짜 먹을거리’를 만들어내고 싶다는 열망을 가지게 되였고 드디여 2005년 6월 14일, 연변세진식품유한회사를 설립하면서 그 꿈을 이루게 되였다.

룡정시에 자리 잡은 600평방메터 남짓한 공장에서 처음 생산한 제품은 ‘세진순다시’라는 조미료 한가지뿐이였다. 직원이라 해봐야 그를 포함해 겨우 5~6명에 불과했다.

“처음엔 정말 막막했습니다. 하지만 ‘식품은 곧 사람의 인품’이라는 신념 하나로 버텼습니다. 정직하게 만들면 손님이 먼저 알아보고 찾아올 것이라고 믿었죠.”

이러한 정직한 고집은 시장에서 서서히 통하기 시작했다. ‘세진순다시’가 입소문이 나면서 커피, 김, 랭면, 고추가루, 김치 등으로 제품 품목을 차근차근 늘여나갔다.

제품이 풍성해지면서 류통망도 다양하게 확장되였다. 2001년에는 우진마트상업무역유한회사, 2015년에는 연변청정원수출입무역유한회사, 2019년에는 애사걸식품유한회사, 2023년에는 강소성에 세진식품유한회사를 잇달아 설립하며 전국을 아우르는 식품 생산, 판매 통합 체인을 일궈냈다.

어느덧 1만 7,000평방메터 건축부지를 자랑하는 현대화된 공장과 300여명의 직원을 거느린 유망기업의 리더로 성장했지만 박권률 사장은 처음 70평방메터 구멍가게를 열었던 그 시절의 초심을 한순간도 잊은 적이 없었다.

위기 속에서 새로운 기회를 잡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는 법이다. 그에게도 시련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불쑥 찾아왔다. 한때 비상시기를 겪으면서 오프라인 중심의 류통망이 하루아침에 마비되고 말았다.

납품길이 막히고 손님의 발길이 끊기면서 공장 가동은 중단될 위기에 처하게 되였다. 하루하루 쌓여가는 적자에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들이 이어지면서 300여명 직원들의 생계가 그의 어깨에 무겁게 얹혀있었다.

“날마다 적자를 면치 못했습니다. 오프라인 시장만 바라보고 있다간 모두가 길거리에 나앉을 판이였죠. 생존의 갈림길에서 눈을 돌린 것이 바로 더우인 생방송 판매였습니다.”

당시만 해도 지역 오프라인 식품기업이 생방송 판매에 직접 뛰여드는 것은 파격적인 도전이 아닐 수 없었다. 주변에서는 식품회사 사장이 무슨 생방송을 하느냐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더우인 생방송의 첫시작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생방송을 켜도 시청자는 고작 몇명뿐이였다. 그래도 박권률 사장은 상품이 좋아야 팔 수 있고 품질은 생방송 판매의 생명선이라는 원칙을 세워 한사코 밀어붙였다. 화면 너머의 몇 안되는 시청자들에게 꾸밈없는 설명과 확실한 품질, 진심어린 써비스로 연변 특산물의 우수성을 설명하고 직접 음식을 시식하며 소통했다.

“우리의 연변 특산물이 이 작은 지역에만 갇혀있어서는 안된다는 확고한 신념이 있었습니다. 시청자가 한명이여도 100명인 것처럼 진심을 다했습니다.”

시청자들이 안심하고 구매할 수 있도록 박권률 사장은 생방송 판매에 올리는 모든 상품을 하나하나 꼼꼼히 점검했고 보내는 모든 상품이 기대에 부응하도록 최선을 다했다. 결국 그 진심은 통했고 그의 생방송을 찾는 사람들이 차차 많아졌다. 몇명에 불과했던 시청자 수는 수십명, 수백명으로 늘어났고 좋은 구매후기가 이어지면서 입소문이 터졌다. 주문알람음이 쉴새없이 울리면서 상품은 불티나게 팔렸으며 생방송 개시후 최고로 하루 매출액이 100만원을 달성하는 기적도 일궈냈다. 소비자와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생방송 방식이 구매 결정에 영향을 미치면서 판매자의 전문성과 신뢰도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요소로 자리 잡았던 것이다.

생방송중에 박권률 사장은 시청자들의 아이디를 기억해 직접 불러주고 잇달아 올라오는 질문에도 가능한 한 모두 답변하려고 노력한다. 방송시간이 예정시간을 훌쩍 넘기는 경우가 많은 것도 고객과의 대화를 우선시하기 때문이다. 좋은 제품을 저렴하게 판매하는 것은 기본이고 고객들이 ‘다음 방송도 기다려진다’고 느낄 수 있도록 신뢰를 쌓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했다.

박권률 사장은 지역 특성을 살린 홍보 요령도 정확히 꿰뚫었다. 연변이 인기관광지로 급부상하면서 연변 특산물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도도 한결 올라갔다.

“연변의 지명도가 높아진 덕분에 생방송 인지도와 영향력도 더 커졌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연변이 왕훙도시로 발전한 성과를 저희도 실질적으로 누리고 있습니다.”

박권률 사장은 감회에 젖어 말했다.

오프라인의 막힌 판로를 온라인이라는 획기적인 수단으로 뚫어낸 박권률 사장의 과감한 결단이 ‘세진식품’을 절망의 늪에서 건져낸 셈이였다.

‘가족’들과 함께 진정성의 힘을 키워나가다

박권률 사장의 경영철학을 론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핵심 키워드는 바로 ‘사람’과 ‘장기주의’이다. 최근 있었던 연변조선족기업가협회모임에서 박권률 사장은 후배 창업자들을 향해 이렇게 조언했다.

“창업은 단기적인 리익을 보고 달려들어서는 안됩니다. 철저히 ‘장기주의’를 고수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언제나 남을 배려하는 리타주의와 성실신용이 자리 잡고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경영철학이 극명하게 반영된 곳이 바로 ‘세진식품’의 조직문화이다. 오늘날 300여명의 직원중 상당수는 10년 내지 15년 이상 박권률 사장과 동고동락하며 산전수전을 다 겪은 베테랑들이다.

“우리 회사는 그저 월급을 주고받는 직장이 아닙니다. 고난과 시련을 함께 이겨낸 ‘가족’입니다. 사장이 직원을 가족처럼 대하지 않는데 어떻게 직원들이 고객을 정성스레 대하고 알심 들여 음식을 만들겠습니까?”

‘식품은 곧 사람의 인품’이라는 슬로건을 내건 박권률 사장은 아무리 바빠도 음식재료 선별부터 포장에 이르는 전반 과정을 표준화된 절차에 따라 엄격히 감독하고 점검한다. 단기적인 류행을 좇아 잠간 빛을 발하는 류행상품을 만들어 파는 대신 오래도록 사랑받을 수 있는 ‘생명력이 긴 제품’을 고객들에게 전달하려는 그의 소신을 가족 같은 직원들이 똘똘 뭉쳐 지켜주기에 ‘세진식품’은 단 한번의 음식안전사고 없이 20년 동안 지속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혼자 가면 빨리 갈지 몰라도 함께 가면 멀리 간다

성공의 궤도에 오른 후에도 박권률 사장의 시선은 결코 자기 회사에만 머물러있지 않았다. 물류창고를 가득 채운 상자들을 바라볼 때마다 그는 판로가 막혀 발을 동동 굴러야 했던 그 아득하고 막막했던 시절을 떠올린다.

“저 역시 험난한 고비를 넘겨봤기에 좋은 제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판로를 찾지 못해 애끊는 연변 기업인들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소비자와 연변의 본토브랜드를 련결하는 오작교 역할은 물론 각 지역 기업인들의 상업 활성화를 위한 상생의 공익 생방송을 하기로 결심했다. 박권률 사장은 연변조선족자치주상무국과 연변조선족자치주부녀련합회 등 유관 부문을 찾아 의향을 밝히고 연변조선족기업가협회와 뜻을 모았다. 판로 때문에 애간장을 태우는 연변의 기업인들을 위해 자신의 더우인 채널에서 단 한푼의 수수료도 받지 않고 생방송 판매를 무료로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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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방송을 시작하면 10시간을 훌쩍 넘기는 대장정이 펼쳐지지만 방송 현장은 항상 활기로 차넘쳤다. 박권률 사장은 생방송 때마다 목이 쉬도록 제품을 설명하고 음식은 직접 시식하고 물건은 직접 체험하며 전국 시청자들의 마음의 문을 두드렸다.

그 진정성은 놀라운 성과로 이어졌다. 올해초에 진행된 ‘설맞이 공익 생방송’에서는 이틀 만에 무려 48만원의 매출액을 올리는 쾌거를 이뤄냈다. 첫 공익 생방송에서 8시간 만에 50만원, 두번째 공익 생방송에서 7시간 만에 50만원을 기록한 데 이어 지금까지 진행된 세차례의 공익 생방송 루적 매출액은 148만원을 돌파했다.

연변 지역 19개 우수기업의 특산물이 ‘률형’의 더우인 생방송을 타고 전국 방방곡곡으로 날개를 달고 팔려나갔다.

생방송 판매에 처음 도전했던 한 식품회사 사장은 방송이 시작되자마자 쉼없이 울려대는 주문알람음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준비한 수량이 눈 깜짝할 사이에 동이 나버렸던 것이다.

“평소에는 지역의 일부 고객에게만 겨우 팔리던 식품이 ‘률형’의 정직하고 솔직한 소개에 힘입어 전국에서 주문이 폭주했습니다. 단지 물건을 많이 판 것을 넘어 소비자와 단단한 신뢰를 쌓고 우리 브랜드의 가치를 전국에 알린 뜻 깊은 축제였습니다.”

연길시 한 특산물가게 주인 역시 온라인 공익 생방송이 가져다준 기적을 온몸으로 실감했다. 세번의 공익 생방송에서 그의 벌꿀제품은 단 몇분 만에 수천근이 판매되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웠다.

“늘 판로와 인지도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는데 박권률 사장님의 무상봉사 덕분에 우리 같은 작은 가게들이 바깥세상으로 나갈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되였습니다.”

박권률 사장의 이러한 공익 생방송은 단순한 대리판매나 반짝이벤트를 뛰여넘어 지역내 신생기업들에 함께 뭉치면 전국으로 나갈 수 있다는 뜨거운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어주었다.

자신의 플랫폼을 기꺼이 내여주며 지역 특산물이 전국으로 시원하게 뻗어나갈 수 있도록 탄탄대로를 놓아준 박권률 사장은 연변의 기업인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여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연변 미식이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살아있는 명함’으로 자리 잡는 데에도 일조했다.

정직한 땀방울이 만들어낼 래일의 ‘세진식품’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박권률 사장에게 앞으로의 꿈을 물었다. 활기찬 물류창고를 둘러보며 돌아온 대답은 명쾌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정직하게 음식을 만들고 연변의 훌륭한 먹을거리를 전세계에 알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서로 의지하며 걸어온 우리 ‘세진식품’ 식구들과 연변의 지역 기업인들과 오래오래 동행하고 싶습니다.”

박권률 사장의 행보는 단순한 성공이야기를 넘어선다. 그가 걸어온 길은 모진 풍파가 몰아쳐도 꺾이지 않는 굳은 의지와 그 와중에도 주변을 돌아볼 줄 아는 따뜻한 인품으로 만들어낸 려정이다. 그리고 그 려정은 이제 개인의 성취를 넘어 연변의 발전과 진흥을 향한 더 큰 걸음으로 이어지고 있다.

박권률 사장과 ‘세진식품’ 식구들이 파죽지세로 또 한번의 힘찬 도약을 이뤄내기를 진심으로 응원하고 기대한다.

 

—《청년생활》2026년 제9호